『동』 (2023)
『동』 (2023)
치열하게 버티는 너는 사실 죄인보단 위인에 가깝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세상은 스스로의 난독을 부정하고 너를 가두려 한다. 가둬질 바엔 버티겠노라 너는 침묵으로 선언한다. 이제는 말을 해도 괜찮으리라 수십 번 고개를 내밀었을 테지만 너의 머리에는 수많은 흉이 져있다. 그제야 구실이라 불리는 두려움을 파악한다. 너는 선언을 어긴 너에게 죄를 뉘우치듯 다시 고개를 숙였을 것이다. 좋은 먹이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배워서 그렇다. 그러나 세상이 너를 먹어치우기엔, 너는 너무도 단단하게 그곳을 지켜내고 있다.
고백하자면, 너의 앞선 나날과 현재는 큰 차이가 없다. 또 고백하자면 내일도 글피도 존재에는 오직 침식만이 작용할 듯하다. 해서 또 고백하자면, 너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나의 몫이 턱없이 크다. 살을 덧대어 나아가기에는 어느새 너무나 많은 것이 끝났다. 네가 겪은 실패 보다 더 많은 실패가 기다리고 있다. 이 모든 것을 기회로 삼기에는 지나치게 두려움을 깨쳤다. 내가 너에게 과연 정당한 배상을 해낼 수 있을까, 기꺼워했으면 하는데, 자신이 없다. 무섭다. 안타깝게도 나는 네가 제일 경멸하는 형태로 빚어지고 있나 보다.
- 사진집 『동』 (2023) 본문 중 일부 발췌